조선 후기에는 가뭄과 홍수 등으로 3~4년마다 한 번씩 기근이 들었다고 기사는 전합니다. 먹을 것을 찾아 살던 곳을 떠난 유민(流民·떠돌아다니는 백성) 가운데 많은 사람이 걸식하다 굶어 죽었고, 일부는 약탈에 나섰다는 설명입니다. 기사는 이들을 줄이기 위한 토지개혁 구상이 나왔지만, 이익·박지원·정약용의 제안은 실제로 실행되지 않고 글로 남았다고 평가합니다.
배경과 맥락
기사가 제시하는 출발점은 흉년 자체만이 아니라, 흉년을 버틸 토지가 누구에게 있었느냐는 문제입니다. 이익은 『성호사설』의 「유민환집」에서 제때 농사를 짓고 식량을 비축한 사람은 홍수와 가뭄에도 살아갈 방도가 있었다고 썼습니다. 반대로 토지가 없거나 작은 규모로 소작하는 농민은 기근을 견디기 어려웠다는 것이 기사의 설명입니다.
박지원의 『한민명전의』를 인용해 기사는 소작농이 생산물의 70% 이상을 지주와 국가에 내주었다고 서술합니다. 기근에 생계를 잇기 위해 자기 땅을 지주에게 팔고 소작인이 되는 농민이 생겼으며, 그 과정에서 대지주가 나타났다는 설명도 덧붙입니다. 따라서 토지를 어떻게 소유하고 나눌 것인가는 단순한 재산 문제가 아니라 농민이 살던 곳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제시됩니다.
세 실학자의 제안은 해법이 서로 달랐습니다. 이익의 균전론(토지를 고르게 나누자는 구상)은 농민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토지인 영업전(농민의 생업을 위해 주는 토지)을 균등하게 나누고, 사고팔지 못하게 하자는 내용입니다. 박지원의 한전론(토지 소유에 상한을 두자는 구상)은 기존 소유를 인정하되 앞으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토지의 상한선을 정하자는 방식입니다.
기사는 박지원의 구상을 설명하면서 2027년 1월 1일부터 개인 소유 상한을 5천 평으로 정한다는 예시를 듭니다. 이는 기사가 제시한 설명을 위한 사례이지, 실제 시행되는 제도라고 확인된 내용은 아닙니다. 정약용의 여전론(마을이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경작하는 구상)은 토지를 마을이 소유하고 주민들이 함께 경작한 뒤 노동시간에 따라 수확물을 나누자는 제안입니다.
이 소식이 뜻하는 것
세 구상의 공통점은 토지를 소수 지주가 넓게 차지하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고, 농민이 생계를 유지할 토지를 마련하려 했다는 데 있습니다. 방식은 달랐습니다. 이익은 최소한의 토지를 고르게 보장하려 했고, 박지원은 소유 상한선을 두려 했으며, 정약용은 마을 공동 소유와 공동 경작을 제안했습니다. 토지 소유권을 나누는 방식부터 공동체 운영까지, 개혁을 현실화하려면 서로 다른 선택이 필요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기사는 이 제안들이 실현되지 않은 이유를 제안자들의 사회적 위치와 연결합니다. 이익과 정약용은 남인이자 경화세족(서울에 기반을 둔 유력 가문 출신 집단)이었고, 박지원은 반남 박씨였으며, 세 사람 모두 지주였다고 서술합니다. 기사의 논지는 자신의 토지와 친족집단의 토지를 내놓아야 하는 처지에서 개혁안을 실제로 추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기사에 담긴 분석이며, 각자의 토지 규모나 정책 추진 과정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독자에게 남는 질문도 토지 정책의 방향만은 아닙니다. 기사는 9월 30일 농지 전수조사와 관련한 정부 간담회와 농지 현장 방문을 언급하고, 국민의힘이 정부의 농지법 개정을 비판했다고 전합니다. 과거의 개혁안이 실행되지 않은 일을 오늘의 정책과 연결해 볼 때, 정책을 누가 제안했는지뿐 아니라 실제로 어떤 절차를 거쳐 누구에게 영향을 주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농지 정책의 변화를 앞둔 농민이라면, 정책을 둘러싼 찬반 주장만으로 결과를 단정하기보다 어떤 규칙이 실제로 제안됐는지, 자신의 토지 이용이나 생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는 특정 제도의 내용이나 효과를 미리 단정하는 뜻이 아니라, 기사가 던진 ‘구상이 실행으로 이어지는가’라는 질문을 현재의 정책 논쟁에 적용해 본 것입니다.
확인된 사실과 아직 알 수 없는 것
확인된 사실
- 기사는 조선 후기의 잦은 기근과 유민 발생을 토지·생계 문제와 연결합니다.
- 이익의 균전론은 영업전을 나누고 매매를 금지하는 구상으로 설명됩니다.
- 박지원의 한전론은 토지 소유 상한선을 두는 구상으로 소개되며, 5천 평은 기사에 든 예시입니다.
- 정약용의 여전론은 마을 공동 소유·경작과 노동시간에 따른 수확물 분배를 제안한 것으로 서술됩니다.
- 기사는 세 사람의 토지개혁론이 실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아직 알 수 없는 것
- 이 구상들이 당시 조정의 정책이나 논의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원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 세 사람의 실제 토지 소유 규모와 각 제안이 실행되지 않은 과정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 기사에서 언급한 현재의 농지 정책과 정치인들의 대응이 이후 어떻게 전개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독자가 확인할 것
- 농지 정책에 관한 논쟁을 볼 때, 비판과 찬성의 주장뿐 아니라 실제로 제안된 규칙과 적용 대상을 구분해 살펴보세요.
- 정책의 영향을 받는 농민이라면 자신의 토지 이용이나 생계에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는지, 제도 시행 여부와 절차가 확정됐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정치인의 공약이나 비판을 평가할 때는 구상에 그치는지, 실행 방법과 결과가 제시되는지를 함께 따져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