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땅, 동물까지 뒤흔든 가자의 전쟁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전쟁의 피해는 사망자와 부상자 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집과 학교, 병원 같은 생활 기반 시설뿐 아니라 농경지와 식생, 동물의 서식 환경까지 파괴되고 있다는 기록이 나왔다.
신간 『가자의 목소리』는 작가 조 사코를 비롯해 문인, 의사, 교사, 인권 활동가, 학자, 기자 등 23명의 글을 모은 책이다. 이들은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일을 각자의 경험과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전하며, 전쟁이 사람들의 일상과 미래에 남긴 흔적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준다.
이 책이 기록하는 파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그치지 않는다. 땅과 동물, 교육과 환경, 생활 기반 시설도 함께 피해를 입고 있다.
반복해서 읽고 기록해야 하는 이유
책은 가자지구의 현실을 보여주는 여러 질문을 던진다. 어린이의 심각한 신체 손상, 유엔 활동가의 희생, 식생과 농경지의 파괴, 학교 폐쇄와 교육 중단 등 서로 다른 피해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같은 장소와 사람들에게 시선이 모인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벌어진 일을 글로 남기고 책으로 펴내며 세상에 알리려 한다. 기록은 희생자가 숫자나 짧은 뉴스로만 기억되지 않도록 하고,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보존하는 수단이 된다.
책이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참상을 한 번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말자는 태도다. 현지의 기록을 읽고 기억하는 일은 멀리 떨어진 독자에게도 전쟁의 현실을 이해하고, 피해가 잊히지 않도록 관심을 이어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군인의 행동과 전쟁을 둘러싼 온라인 문화
책에 참여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외과 의사이자 기자인 메리 투르파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보인 행동과 이를 둘러싼 온라인 문화를 기록했다. 글에는 폐허가 된 가자를 배경으로 촬영한 영상, 주거 지역 폭파를 축하하는 게시물, 팔레스타인 주민의 물건을 이용해 조롱하는 사진 등이 등장한다.
투르파는 이런 행위가 일부 개인의 돌발 행동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전쟁의 참혹한 장면이 인터넷에서 공유되고 웃음거리나 자랑거리처럼 다뤄질 때, 폭력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고 피해자의 인간성이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투르파가 주목한 것은 잔혹한 이미지뿐 아니라, 그 잔혹함을 드러내놓고 즐기는 태도다.
책은 이러한 사례를 통해 전쟁의 폭력이 전장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휴대전화 영상과 사회관계망 서비스 게시물은 전쟁을 먼 곳의 뉴스로만 접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전달할 수 있지만, 반대로 피해자를 조롱하거나 폭력을 정상적인 일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도 이용될 수 있다.
폐허가 된 환경은 전쟁 이후에도 남는다
언론인 니나 라카니는 「팔레스타인 생태계 대량 파괴」라는 글에서 가자지구의 환경 피해를 다룬다. 책에 인용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6월 무렵 가자지구 식생의 83%, 농경지의 70%가 파괴된 것으로 집계됐다.
생태계 파괴, 즉 에코사이드(넓은 지역의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는 전투가 끝난 뒤에도 주민의 생활과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책은 약 4,200만 톤으로 추산되는 건물 잔해에 유해 물질과 사람의 유해가 뒤섞여 공기와 토양, 지하수를 오염시킬 우려가 있다고 설명한다.
전쟁으로 농경지가 사라지면 식량을 생산하고 생계를 이어갈 기반도 약해진다. 오염된 물과 먼지, 무너진 건물 잔해를 치우는 문제까지 겹치면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안전한 생활을 다시 꾸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책은 전쟁의 환경 피해가 한 지역 안에만 머물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공습과 지상 공격 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을 둘러싼 지적은 군사 행동이 기후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환경 회복의 범위와 속도는 피해 조사와 복구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철새와 길고양이도 전쟁의 영향권에
가자지구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유럽을 오가는 철새가 지나가는 주요 이동 경로에 자리해 있다. 책은 한때 수많은 새가 찾던 지역의 서식 환경이 전쟁으로 훼손되면서 250종의 새가 멸종 위기에 놓였다고 전한다.
동물은 전쟁의 피해를 스스로 알리거나 피난을 떠나기 어렵다. 먹이와 물을 구하기 힘들어지고 서식지가 무너지면 야생동물뿐 아니라 주민과 함께 살아온 반려동물, 길고양이와 나귀도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책에 담긴 기록에는 극심한 상황에서도 동물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이런 장면은 생명을 돌보는 일이 전쟁과 무관한 부수적인 행동이 아니라, 파괴된 일상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노력임을 보여준다.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와 남겨진 폐허
책은 땅을 파괴하는 일이 건물과 농경지를 잃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짚는다. 집과 농사를 지을 터전이 사라지면 주민이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과 앞으로의 삶을 계획할 능력도 함께 흔들릴 수 있다.
이 문제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을 뜻하며,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전후 팔레스타인인들이 대규모로 추방된 사건)의 역사적 상처도 겹쳐 있다. 과거의 강제 이주와 현재의 파괴가 이어져 보일 때, 귀환과 삶의 재건은 단지 집 한 채를 다시 짓는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역사와 권리를 되찾는 문제로 다가온다.
전쟁 이후의 복구를 논의할 때는 건물 재건만이 아니라 안전한 귀환, 주거와 생계, 교육, 환경 복원을 함께 살펴야 한다. 책은 전쟁으로 무너진 것이 무엇인지 넓게 기록함으로써, 평화와 복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독자에게 질문한다.
국제적 연대와 불매 운동의 확산
팔레스타인 인권 운동가 오마르 바르구티는 비디에스 운동(보이콧·투자 철회·제재를 통해 압력을 가하려는 시민운동)이 여러 지역에서 지지를 넓혀가고 있다고 소개한다. 책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시의 투자 제한, 노르웨이 연기금의 이스라엘 국채 투자 철회, 인텔의 이스라엘 신규 공장 건설 중단 등이 사례로 제시된다.
이런 움직임은 정부와 기업, 투자자가 전쟁과 인권 문제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을 보여준다. 불매와 투자 철회가 실제 정책이나 기업 활동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는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소비자와 노동조합, 지역사회가 경제적 선택을 통해 의사를 표현하려는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책은 이스라엘을 둘러싼 홍보와 여론전도 함께 다룬다. 국제사회에서 전쟁의 책임과 피해를 놓고 상반된 설명이 맞서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주장을 검토하고 현지 기록을 확인하는 일은 독자가 사실을 판단하는 데 중요하다.
절망 속에서도 이어지는 삶과 기록
책에 실린 글에는 총구 앞에서도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잔해 속에서 글을 배우는 아이들,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 현장으로 돌아가는 기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생계가 무너진 가운데 길고양이와 나귀에게 먹이를 나누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시구처럼, 이 기록들은 삶을 사랑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희망의 장면이 피해의 규모를 가리거나 전쟁의 책임을 흐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기록이 이어지는 한, 읽고 기억하는 일도 계속될 수 있다. 『가자의 목소리』는 그 기억을 통해 희생자와 연대하자고 제안한다.
이 책이 독자에게 남기는 질문은 가자지구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전쟁의 피해가 사람과 자연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그리고 타인의 고통이 망각되지 않도록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 글을 쓰고 읽는 일은 폭력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우지 않고 책임과 회복을 논의하는 데 필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