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마다 반복되는 '현금 살포'의 유혹
6월 3일로 예정된 지방선거가 5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를 막론한 후보들이 앞다투어 현금성 지원 공약을 내놓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고유가와 고물가로 고통받는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지만, 실상은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 검토나 재원 조달 계획이 빠진 포퓰리즘(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여 현실성 없는 정책을 펴는 정치 행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정치권이 정책적 대안 제시보다는 즉각적인 보상을 통해 표를 얻으려는 '현금 기반의 정치 전략'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장기적인 지역 발전 전략보다는 단기적인 득표율 상승에 매몰된 위험한 흐름입니다.
지역별로 확산되는 무분별한 지원 약속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상황의 심각성이 더욱 드러납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허태정 대전시장 후보는 고유가 피해 구제를 위해 주민 1인당 2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는 중앙정부가 저소득층에게 지급하는 지원금과는 별개의 추가 지급분입니다.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약 2,900억 원의 지방 재원이 추가로 투입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같은 당 경선 경쟁자였던 장철민 의원조차 예산 뒷받침이 부족한 무리한 공약이라고 비판했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습니다. 전남-광주 지역의 김영록 후보는 3,000억 원 규모의 구제 패키지를 제안했으며, 국민의힘 박완수 경남지사 역시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주민에게 1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 경우 예상 소요 비용은 약 3,288억 원에 달하며, 이미 신청 접수 일정까지 구체적으로 공지된 상태입니다.
벼랑 끝에 선 지방 재정의 현실
문제는 이러한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 재정적 기초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지방자치제도는 도입된 지 31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지자체가 스스로 살림을 꾸릴 능력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재정자립도의 심각한 불균형
재정자립도(지방정부가 전체 재원 중 지방세 등 자체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스스로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를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처참합니다.
-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서울·경기·세종을 제외한 17개 시도 중 14곳의 재정자립도가 50% 미만입니다.
- 특히 전북, 전남, 경북, 강원 지역은 자립도가 20%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 전국적으로 100개가 넘는 지자체가 자체 세수만으로는 공무원 월급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현금 살포'가 가져올 치명적인 부작용
지속 가능한 재원 마련 대책 없이 현금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쓰는 문제가 아니라, 지방 재정의 구조적 붕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한정된 예산은 '제로섬 게임'(한쪽이 얻으면 다른 쪽은 반드시 잃는 구조)과 같기 때문입니다.
예산 전용의 위험성
현금성 지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자체는 결국 다른 예산을 삭감해야 합니다. 이때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필수 서비스들입니다.
- 취약계층 복지: 장애인, 독거노인 등을 위한 실질적인 돌봄 서비스 예산 삭감
- 인프라 유지보수: 도로, 교량 등 시민의 안전과 직결된 시설 관리 비용 감소
- 미래 투자: 지역 산업 육성 및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장기 프로젝트 중단
결국, 선거 때 받은 10만 원, 20만 원의 일시적 혜택이 지역 사회의 장기적인 삶의 질 저하와 안전 위협으로 되돌아오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결론: 표 매수가 아닌 책임 정치가 필요하다
지방정부의 예산은 정치인의 선거 캠페인을 위한 '쌈짓돈'이 아닙니다. 이는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구성된 공공 자원이며, 이를 관리하는 단체장은 엄격한 책임감을 가진 '수탁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라도 후보들은 현실성 없는 현금 공약을 철회하고, 재정 책임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 경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명확한 재원 조달 방안이 없는 공약은 정책이 아니라 기만이며, 이는 결국 지방 자치의 근간을 흔들고 시민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