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숨통,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가치
호르무즈 해협은 지리적으로는 단순히 두 지점을 잇는 좁은 바닷길에 불과하지만, 정치적·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Choke Point)입니다. 이곳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통로로, 이곳이 막히면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고 세계 경제가 마비될 수 있는 치명적인 지점입니다.
하지만 이 좁은 바다를 바라보는 미국과 이란의 시각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미국은 이곳을 누구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국제 수로로 보는 반면, 이란은 자신의 주권이 미치는 영해(국가 주권이 미치는 바다 영역)의 일부로 간주합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실제 충돌로 이어집니다. 이란이 통행료를 징수하려 하면 미국은 이를 불법이라고 규정하며, 반대로 미국이 해협을 봉쇄하거나 군사적 압박을 가하면 이란은 이를 주권 침해라고 강력히 비난합니다.
해양법의 기초: UNCLOS와 그 한계
바다에서의 권리와 통제권을 규정하는 국제적 기준을 해양법(Law of the Sea)이라고 합니다. 이는 전쟁법과는 별개로, 평상시 바다를 어떻게 이용하고 관리할지를 정한 일종의 '바다 헌법'과 같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기준은 1982년에 완성되어 1994년부터 발효된 UN 해양법 협약(UNCLOS)입니다. 이 협약은 국제 해협의 정의와 이용 규칙을 명확히 하여 국가 간의 분쟁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UN 해양법 협약(UNCLOS): 전 세계 171개국과 유럽연합(EU)이 비준한 포괄적인 해양 법전으로, 영해, 배타적 경제수역(EEZ), 대륙붕 등의 범위를 규정합니다.
문제는 이 거대한 약속에 미국과 이란이 모두 완전히 합류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란은 협약에 서명은 했지만 최종 승인(비준)을 하지 않았고, 미국은 서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따르는 공통의 규칙이 정작 이 갈등의 당사자들에게는 강제력을 갖지 못하는 법적 공백 상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란의 논리: '무해통항권'과 주권의 강조
이란은 UNCLOS 이전의 오래된 국제법 기준을 근거로 내세웁니다. 특히 1949년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코르푸 해협 사건(Corfu Channel case) 판결과 1958년 영해 협약을 주요 근거로 삼습니다.
이 오래된 기준의 핵심은 무해통항권(Innocent Passage)입니다. 이는 외국 선박이 연안국의 안전과 보안을 해치지 않고 단순히 통과만 한다면, 그 통행을 허용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 무해통항의 특징: 선박이 멈추지 않고 신속히 통과해야 하며, 무기 사용이나 첩보 활동 등 연안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 연안국의 권한: 이란과 오만 같은 연안국은 안전과 환경 보호를 위해 일부 규칙을 만들 수 있으며, 통항이 '무해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거부할 권한을 가집니다.
하지만 이란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영해라는 이유로 통항을 일시적으로 중단(Suspend)시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이란이 근거로 삼는 1958년 협약조차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해당 협약은 국제 해협의 경우 무해통항권을 중단시킬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논리: '통과통항권'과 항해의 자유
미국은 UNCLOS의 회원국은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 개념이 이미 국제적인 관습법으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합니다. 통과통항권은 무해통항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자유를 보장합니다.
통과통항권이 적용되면 연안국의 통제력은 약해지고 선박의 자유로운 이동 권한이 커집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권리가 포함됩니다.
- 잠수함의 통과: 무해통항에서는 잠수함이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지만, 통과통항에서는 잠항 상태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항공기 비행: 해협 상공을 비행하는 항공기의 통과가 허용됩니다.
- 신속한 이동: '지속적이고 신속한' 통과라면 연안국이 이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항해의 자유 작전(Freedom of Navigation Operations, FONOPs)을 수행합니다. 이는 미국 군함이 논란이 되는 해역을 의도적으로 항해함으로써, 특정 국가의 과도한 영유권 주장을 무력화하고 국제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행동입니다.
'끈질긴 반대자'와 법률전(Lawfare)
여기서 흥미로운 법적 쟁점은 관습법(Customary Law)의 적용 여부입니다. 관습법이란 명문화된 조약이 없더라도 많은 국가가 오랫동안 일관되게 실천하여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된 규칙을 말합니다.
미국은 통과통항권이 이미 관습법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란은 끈질긴 반대자 규칙(Persistent Objector Rule)을 내세웁니다. 이는 새로운 국제 표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일관되게 반대해 온 국가는 그 규칙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법률전(Lawfare): 법(Law)과 전쟁(Warfare)의 합성어로, 군사적 수단 대신 법적 논리와 절차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압박하고 전략적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란은 UNCLOS 협상 단계부터 통과통항권에 반대해 왔으며, 1982년 서명 당시에도 이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따라서 이란은 자신들이 이 규칙의 예외 대상이라고 주장하며, UNCLOS를 비준한 국가들만이 이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논리를 펼칩니다.
결론: 불확실한 바다의 미래
호르무즈 해협의 갈등은 단순한 군사적 대치나 경제적 이권 다툼이 아닙니다. 이는 국제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의 충돌입니다.
현재의 상황은 매우 위태롭습니다. 미국과 이란뿐만 아니라, 이곳을 지나는 수많은 유조선의 국적국들 또한 각자의 법적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갈등을 해결하고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휴전이 아니라, 어떤 규칙을 따를 것인가에 대한 상호 합의와 이를 준수하겠다는 공동의 약속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법적 우주에 살고 있는 두 강대국이 합의점에 도달하기까지는 매우 험난한 과정이 예상됩니다.

















